지리산 산세와 함께한 석등의 장엄한 모습 /사진:화엄사 홍보기획위원회 제공

[데일리전남] 천년 세월을 지켜온 화엄사 각황전 앞 석등(국보 제12호)이 62년 만의 정밀 복원 과정을 마치고 제자리를 찾았다. 전남 구례군 대한불교조계종 제19교구 본사 지리산 대화엄사(주지 우석스님)는 오는 11월 5일 오후 1시 30분, 화엄사 각황전 앞마당에서 ‘화엄사 각황전 앞 석등 복원 기념식’을 개최한다고 밝혔다.

화엄사 각황전 앞 석등은 통일신라시대에 조성된 작품으로, 높이 6.4m에 달하는 국내 최대 규모의 석등이다. 1,300여 년 동안 화엄사의 법등을 밝혀온 이 석등은 장중하면서도 섬세한 조각미로 한국 석조문화의 정수이자 ‘신라 석등 조형미의 최고봉’으로 꼽힌다. 각황전 앞에 우뚝 선 이 석등은 사찰 중심 공간의 상징물로, 불교의 지혜와 자비가 중생에게 퍼지는 ‘빛의 상징’으로 여겨져 왔다.

이번 복원은 1961년 전면 해체보수 이후 62년 만에 진행된 정밀 복원이다. 국가유산청 국립문화유산연구원 문화유산보존과학센터(센터장 박종서)가 주관하여 2023년부터 3년간의 과학적 조사와 보존처리를 통해 복원이 완료됐다.

2023년 해체 고불식 현장, 우석스님과 복원 관계자들 /사진:화엄사 홍보기획위원회 제공

센터는 석등 전면을 3차원(3D) 스캐닝과 구조 모델링을 통해 정밀 분석하고, 유기·무기 오염물 분석으로 표면에 남은 연소 흔적과 손상 원인을 규명했다. 특히 1961년 해체보수 당시 콘크리트로 다진 기초와 일부 변형된 부재를 안정적인 구조로 교체하며, 천년 유산의 원형 복원을 위한 ‘과학+장인 복원’이 병행됐다.

가장 주목되는 복원 기술은 티타늄 보강봉 삽입 처리다. 부재 중 특히 화사석(7조각)과 상대석(3조각)은 파손과 균열이 심해 적절한 직경과 길이의 티타늄 보강봉을 내부에 삽입하여 강도와 내구성을 극대화했다. 이 공법은 전통 석조유물의 미학을 해치지 않으면서도 현대적 안정성을 확보한 ‘비가시적 보강 방식’으로 평가받는다.

문화유산보존과학센터는 “석등의 물리적 손상과 구조적 불안정이 모두 해소됐다”며 “2026년에는 복원 과정과 보존 데이터를 담은 공식 보고서를 발간해 전체 사업을 마무리할 계획”이라고 밝혔다.

우석 스님은 “1,300년 동안 화엄의 빛을 밝혀온 석등이 다시 본래의 모습을 찾게 돼 감격스럽다”며 “이번 복원은 단순한 보수를 넘어, 천년을 이어온 신앙과 문화의 정신을 계승하는 일”이라고 말했다.

복원 기념식에는 조계종 관계자, 국가유산청, 국립문화유산연구원, 불교계 인사와 지역민 등이 참석해 ‘천년의 법등이 다시 타오르는 순간’을 함께할 예정이다.

항공에서 본 화엄사 전경, 석등과 각황전의 조화 /사진:화엄사 홍보기획위원회 제공

화엄사 각황전 앞 석등은 균형 잡힌 비례감, 세밀한 연화문 조각, 팔각형 기단의 안정된 구도 등으로 한국 석조예술의 미학을 대표한다. 특히 봄철 홍매화가 만개하면, 석등과 함께 어우러지는 풍경은 ‘화엄매(華嚴梅)’라 불리며 수많은 사진작가와 탐방객이 찾는 명소로도 유명하다.

이번 복원으로 화엄사는 천년 고찰의 상징성과 역사적 정체성을 더욱 확고히 회복했다는 평가다.

이번 복원은 단순히 한 유물의 복원이 아니라 한국 불교문화유산 보존기술의 새로운 이정표로 기록될 것이다. 천년의 세월 동안 변함없이 지리산 자락을 비춘 법등(法燈), 그 빛이 이제 다시 한층 더 찬란하게 타오른다.